아내를 위한 35년 만의 첫 도전
솔직히 말하면 복면가왕에서 '한낮의 음악 분수'가 등장했을 때는 누군지 전혀 짐작이 안 갔다. 그런데 가면을 벗는 순간 이효정이 나타나니까 정말 깜짝 놀랐다. 45년차 베테랑 배우가 왜 갑자기 노래에 도전했을까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듣고 나서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제 아내가 복면가왕 시청자다. 두 달 후면 아내의 환갑이다. 결혼 35년 동안 노래를 한 번도 안 했다. 환갑 선물로 나왔다"라는 그의 말에서 진짜 남편다운 모습을 봤다. 사실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배우라고 해도 노래는 완전히 다른 영역 아닌가. 게다가 전국 방송에 나와서 처음 도전하는 노래를 선보인다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요즘 세상에 결혼 35년 차 남편이 아내를 위해 이런 깜짝 선물을 준비한다는게 쉬운 일일까. 더군다나 평소에 노래를 전혀 하지 않던 사람이 말이다. 비록 1라운드에서 82대 17로 아쉽게 탈락했지만, 그 마음만큼은 충분히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박상성의 '문밖에 있는 그대'를 부르는 모습에서는 45년간 쌓아온 연기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수는 아니지만 오랜 연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성이 노래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아마 아내분도 집에서 보면서 얼마나 뿌듯했을까 싶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베테랑 배우
사실 이효정이라는 배우를 요즘 들어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지난해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면서 '당근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화제가 된 건 정말 재미있었다. 누가 봐도 점잖은 베테랑 배우인데, 중고 거래에 완전히 빠져있다는 게 의외였다. 300회 이상의 거래 경험이라니, 이 정도면 진짜 전문가 수준 아닌가.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결국 그 플랫폼의 광고 모델로까지 발탁됐다는 점이다. 인생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45년간 연기만 해온 배우가 중고 거래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다니 말이다. MBN '가보자GO'에서 그의 일상을 봤는데, 일산에 30년째 살고 있으면서도 집값이 20년 전과 똑같다며 "그때 분당을 샀어야 하는데"라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었다. 이런 솔직한 모습들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는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시절 한석규, 최민식과 함께했던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하고 거의 생활을 같이했다. 업어 키웠지"라며 농담을 던지는 모습에서 선배로서의 여유가 느껴진다. 지금은 모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지만, 그 시절의 추억은 여전히 소중한 자산인 듯하다. 연기 경력 45년이라는 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데, 최근에 와서야 이렇게 대중들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질투'와 '야망의 전설' 등의 작품으로 처음 알려졌다고 하니, 오랜 시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진정한 연기자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
이효정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만난 아내 김미란과의 러브스토리를 들어보니 정말 로맨틱하다. 군 휴가를 나와 축제 공연을 보러 갔다가 1학년이었던 아내가 2학년 공연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모습을 보고 "저 여자다" 싶었다고 하니, 이런 게 바로 운명적 만남 아닐까.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더 재미있는 건 아내도 나중에 남편이 출연한 '짧은 포옹 긴 이별'이라는 영화를 집에서 보고 "내 스타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정말 서로에게 끌렸던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혼 3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로를 아끼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사랑이 얼마나 귀한 건지 모른다.
특히 감동적인 건 아내의 갱년기 이후 가사 노동을 전담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 나이대 남성들 중에 이런 배려를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아내를 위해 복면가왕에 나와서 노래까지 부르는 모습을 보면, 정말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라는 확신이 든다. 중고 거래를 처음 시작했을 때 아내가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었다고 하면서도, 결국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모습에서도 부부간의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며 웃는 아내의 모습에서 진정한 내조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런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이효정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