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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HBO 동맹과 해리 포터 리부트: K-OTT 판도를 뒤흔든 세 가지 이야기

by 트랜티롸 2025. 7. 10.

hbo 드라마

HBO 상륙과 쿠팡플레이의 급부상

솔직히 말하자면, 불과 1~2년 전만 해도 쿠팡플레이가 토종 OTT 시장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그런데 말이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와의 대형 계약으로 HBO·Max 오리지널 시리즈 수백 편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왕좌의 게임’부터 ‘더 라스트 오브 어스’까지, 그동안 케이블 편성표 사이사이에서 찔끔찔끔 보던 굵직한 타이틀을 한 플랫폼에서 몰아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용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내 주변 서재형 인간들도 “드디어 영어 자막 없이 보던 시대가 끝났다”면서 결제를 눌렀다. 거기에 EPL·KBO·NBA 생중계까지 얹혀 있으니, 스포츠 팬과 드라마 마니아가 동시에 로그인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개인적으로는 요금 인상 소식이 살짝 거슬렸지만, ‘HBO 첫 달 공짜’라는 파격 프로모션이 절묘하게 소비자 심리를 간파했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무료 체험 → 정주행 → 놓칠 수 없음’이라는 이른바 스노우볼 모델이 현실이 됐다. 티빙·웨이브 등 기존 토종 플랫폼은 독점 한국 예능과 라이브 콘텐츠로 맞불을 놓고 있지만, 콘텐츠 전체 볼륨이나 화제성 면에서 체감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시장은 ‘국민 생활 앱’ 쿠팡의 유통 생태계를 업고 올라탄 쿠팡플레이의 공세를 주목하게 됐고, 이는 곧 “한국 OTT 2막이 시작됐다”는 의미심장한 선언처럼 들린다. 뭐 어쨌든,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늘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넓어졌으니 못 본 척하기도 어렵다.

‘드라마 명가’ HBO의 힘과 시청자 반응

사실 나는 예전부터 HBO를 다소 과장된 신화로 받아들였던 사람이다. 하지만 실제로 작품을 몰아서 보니, 그 칭송이 허울뿐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케이블 채널로 출발해 ‘소프라노스’와 ‘더 와이어’로 미국 사회를 해부하고, ‘체르노빌’ 같은 미니시리즈로 역사적 참사를 생생하게 재현하며, ‘화이트 로투스’로 현대인의 위선을 비틀어 웃음과 비극을 동시에 선사한다. 제작비가 아낌없이 투입된 세트와 로케이션, 영화 못지않은 촬영 미장센,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의 내면을 끝까지 파고들어 가차 없이 흔드는 대본이 시청자를 잡아끈다. 그 결과는 SNS 타임라인에서 즉각적으로 확인된다. 토요일 밤이 되면 “스포일러 금지” 해시태그가 동시에 등장하고, 에피소드가 끝나기도 전에 밈과 해석 글이 쏟아진다. 듣자 하니 직장인들은 월요일 출근길까지 ‘석세션’ 속 가족회의 장면을 토론하느라 정신이 없다는데, 솔직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웨스트월드’ 시즌1을 다시 보다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해 엉뚱한 철학책까지 들춰봤으니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이야기의 깊이가 있는 작품이 국내에서 여전히 통한다는 사실이다. 흔히 “한국 시청자는 빠르고 자극적인 전개를 선호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실제 반응은 “잘 만든 서사는 언어 장벽도, 집중 시간을 늘리는 불편도 가뿐히 뛰어넘는다”는 쪽에 가깝다. 결국 HBO 작품이 보여주는 디테일·완성도·철학적 질문은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됐고, 이는 쿠팡플레이의 급부상과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무심코 재생한 한 편이 새벽 다섯 시의 눈 밑 다크서클로 이어지는 폐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는 한마디로 자신의 밤샘을 합리화한다. 참, 콘텐츠의 힘이란 이런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해리 포터 시리즈가 던지는 기대와 숙제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점이 있다. HBO가 과거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해리 포터’라는 메가 IP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원작 영화 8편이 전 세계적으로 워낙 사랑받았기에, 드라마 리부트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는 회의적인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또 우려먹기인가?” “해리의 얼굴이 바뀌면 몰입이 깨지지 않을까?” 같은 걱정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3만 명 넘는 오디션 경쟁을 뚫고 뽑힌 신예 배우들의 프레시한 이미지가 공개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마틸다’ 뮤지컬에서 호평받은 헤르미온느 역 배우가 특히 화제인데, 등장만으로도 “이 정도면 확실히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겠다”는 기대감이 퍼졌다. 드라마 포맷은 원작 7권의 방대한 서사를 시즌별로 세밀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도비의 비극이나 스네이프의 과거처럼 영화에서 생략된 디테일이 복원되면, 오랜 팬들에게는 보물창고가 열리는 기분일 것이다. 동시에 4K 기반의 최신 시각 효과로 호그와트, 퀴디치 경기, 마법 전투를 구현한다면 신세대 시청자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다. 물론 숙제도 남는다. 캐릭터 인종·젠더 해석을 둘러싼 논쟁, J.K. 롤링 작가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 그리고 무엇보다 “원작의 향수를 어떻게 건드리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줄 것인가”라는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원작 팬으로서 기대 반 걱정 반이지만, 일단 첫 에피소드가 공개되면 확인하려는 호기심이 마법처럼 발동될 것 같다. 아, 그리고 빼먹을 뻔했는데, 이 시리즈 역시 한국에서는 쿠팡플레이를 통해 동시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쿠팡플레이는 ‘새벽 몰아보기’의 주범이자 ‘마법 학교’ 입학 통지서를 동시에 쥔 셈이다. 긴 겨울밤이 다가오면, 또 한 번 “오늘은 1화만 본다”는 다짐이 허무하게 무너질 날이 머지않았다.